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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조아키노 로시니

by luckykim7 2022. 9. 14.

기획의 천재, 익살스러운 낙천가 로시니

'빌헬름 텔 서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로시니는 농담을 즐기기로 유명했는데, 한 번은 밀라노에 자신의 동상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 그 돈을 내게 준다면 내가 매일 거기 서있을 텐데요. 허허허허 허..."라고 농담을 즐겼다

 

 

베토벤보다  20년 정도 늦게 태어난 로시니는 베토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베토벤이 무겁고, 진중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로시니는 밝고, 가벼운 음악을 작곡하였다. 로시니는 프랑스혁명 이후 불안하고 무거운 시대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예술을 찾는 대중의 취향에 맞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많은 돈을 벌고, 일찍 은퇴하여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며, 요리책도 내는 등 즐거운 삶을 살았다. 이에 반해 베토벤은 참담한 현실과 불우한 운명에 맞서 시대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켜 그 투쟁의 결과 '악성'으로 불려지게 된다.

베토벤이 병상에 있을 때 로시니가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베토벤이 로시니에게 " 오페라는 그만 쓰고 이발사나 쓰시게"고 했다. 베토벤은 로시니의 음악이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둘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로시니는 1792년 2월29일 윤년에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로시니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되었고,  볼로냐에서 본격적으로 고전파 음악 모차르트, 하이든의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래서 초기 로시니의 작품에는 고전파 음악처럼 엄격한 소나타의 형식의 뼈대 위에 오페라를 더해 시대에 부응하면서도 격조 높은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다. 

그 당시 흔한 낭만파 음악을 따르지 않고, 고전파 음악을 기반으로 오페라를 만든 기획의 천재 로시니. 내가 생각하는 로시니는 마케팅 능력이 뛰어났다. 베토벤을 넘어선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 로시니의 마케팅 기획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로시니는 37세에 '빌헬름텔'을 무대에 올렸는데, 반정부적인 내용으로 인해 프랑스 정부에 미움을 받고 볼로냐로 돌아가서는 음악을 끊고 살았다.

 

 

볼로냐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는 것을 즐겼고, 요리에 심취하기도 하고, 낙천적인 괴짜의 삶을 살았다. 오죽하면 모임에서는, 70세가 넘어서도 "내 생일은 윤년이니 나는 18세다."라며 아이처럼 놀았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후 사회는 암울했고, 참담한 현실을 피하고자 가볍고 재미있는 음악을 대중들이 찾을 때, 고전파 음악의 고급스러움을 기반으로 한 로시니의 익살스러운 오페라는 대중에게 당연히 인기 있었다. 

 

기획의 천재 조아키노 로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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