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기본 주거의 개념으로 태어난 mz세대는 기존 세대와의 단절이 기본 값이다. 층간 소음, 민원 발생 안내방송, 차를 빼라 처럼, 외부에서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모두 나에게 해가 되는 것들 뿐이었으니 외부의 간섭을 극도로 경계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이 mz세대가 학생일 때에는 학교 안에서 문제일 뿐이었지만,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인으로서 조직, 협력업체, 거래처들과 교류를 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서,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들과 공존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을까?
답은 "All or none"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온전히 자기것이 되어야 민첩하게 반응한다. mz세대는 미지의 생명체가 아니라 외동으로 태어나서, 학창 시절부터 죽겠다를 입에 붙여 살아온 부모로부터 얻은 것은 손해 보지 않는 인생살이 정도이다. 돈 받은 만큼 일해라,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라, 나는 억울하다, 나 같이 살지 마라처럼 손해 보지 말고 살아라를 DNA에 담고 있다. 부모가 성장기에 돈을 벌었고, 하나뿐인 자식이니 호사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면 부모의 소비를 억제하면서 자식에게 값비싼 경험을 시켜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대가 MZ세대이다.
따라서, 민지세대에게 120%를 기대하는 것은 불만의 소지가 다분하다. 억울함의 DNA를 가진 사람에게 주는 것, 시키는 것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성과에 대한 보상을 적당히 해주면 해결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회사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 본인 할 일만 해도, 부모가 없는 돈 모아서 고가의 경험을 시켜준 탓에, 회사에서 비용과 회사 이익을 제외하고 지급하는 보상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sns와 동영상 매체들은 이들의 눈높이를 한없이 끌어올렸다.
호텔 뷔페를 먹어본 사람이 웨딩홀 뷔페에 만족할 리가 없다. 억울함이 내재된 인간이 실시간으로 지구인 전부와 비교당하는 본인을 견디는 것은 고행이다. 이런 MZ세대가 눈에 불을 켜고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기대 이상의 보상을 주거나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기업에서는 기대 이상의 보상을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소기업에 근무하지만, 실시간 비교 대상은 카카오에 근무하는 연봉 1억 2천만 원 받는 사원이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두 번째 방법인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덜컹거리고는 있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의 생산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업무분장에 120% 이상을 잘 녹여 둔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재택근무를 하는데 업무량이 너무 많다는 불만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도 아이러니하게 실시간 비교 때문이다. 각자의 업무성과도가 실시간 공개되고 비교되다 보니 업무 역량이 120인 사람이 인플루언서가 되고, 역량이 70인 사람은 도태되고, 역량이 100인 사람은 120처럼 보이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한다.
그렇게 일하고 나서 받은 월급으로 고가의 소비를 해야 한다. 랍스터 뷔페에 한 번 가면 한 달을 쪼들려야 하지만, 나도 너희만큼 잘 살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자발적으로 퀀텀점프를 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모아서 방향을 바꿀 뿐이다. 도전과 쟁취의 시대는 갔고, 관리와 안정의 시대에 살면서, 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을 맞아 남들보다 손해 보지 않아야 하고, 잘 살고 있음을 과시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바라거나, 눈치를 봐가며 복종하기를 바라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아직 파먹을 부모가 있다. 부모 자신을 희생하여 자식의 소비를 높여준 그 부모 말이다.
결론은 MZ세대에게는 "적당히" "눈치껏" "인정" "도리" "인간적"이란 말은 굴복을 뜻한다. 이들과 함께 일하고자 한다면 " All or nothing"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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